
안녕하세요, 20년 넘게 '기획'이라는 동네에서 굴러먹고 있는 기획자입니다.
요즘 어디 가나 '바이브 코딩(Vibe Coding)' 얘기뿐이죠? 안드레 카파시가 한마디 던진 이후로, "이제 영어로 말만 하면 AI가 알아서 코딩 다 해준다", "기획자가 개발자 대체한다" 같은 달콤한 말들이 넘쳐나요. 솔직히 저도 처음에 그 소리 듣고 가슴이 좀 뛰었거든요. '아, 이제 내 머릿속 기획을 내 손으로 직접 실현하는 시대가 왔구나!' 싶어서요.
그래서 저도 지난 주말에 야심 차게 덤벼봤습니다. 평소 구상하던 서비스의 프로토타입을 커서(Cursor)랑 클로드(Claude) 조합으로 직접 짜보겠다고 말이죠. 그런데 결과가 어땠을까요? 주말 내내 모니터 앞에서 머리 쥐어뜯다가, 결국 일요일 밤에 '현타' 세게 맞고 항복 선언했습니다. 실제로 겪어보니 이건 "말만 하면 되는" 마법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기획자에게 훨씬 더 독하고 정교한 능력을 요구하는 '지능형 노가다'에 가까웠습니다. 제가 삽질하며 배운 뼈아픈 교훈들, 둥글둥글한 소리 다 빼고 아주 뾰족하게 공유해 드릴게요.
1. "라면 끓여줘"라고 하면 AI는 가스 불도 안 켭니다
많은 분이 착각하는 게, AI한테 "로그인 기능 만들어줘"라고 하면 알아서 다 해줄 거라 믿는 거예요. 이건 마치 요리사한테 "맛있는 거 해줘"라고 말하는 거랑 똑같습니다. 요리사는 당황하겠죠? 한식인지 양식인지, 알레르기는 없는지 물어봐야 하니까요.
- 현실은 이렇습니다: 바이브 코딩에서 AI는 아주 똑똑하지만 동시에 시키는 것만 하는 고집불통 조수입니다. "로그인 만들어줘"라고 하면 정말 딱 로그인 창만 만들어요. 비밀번호를 틀렸을 때 메시지는 어떻게 낼 건지, 5번 틀리면 계정을 잠글 건지, 카카오 로그인은 붙일 건지... 이런 디테일한 설계(Logic)가 없으면 AI는 금방 멍청해집니다.
- 기획자의 접근: 이제 기획서는 '설명서'가 아니라 '레시피'가 되어야 합니다. "물 500ml 넣고, 물이 끓으면 면부터 넣고, 3분 뒤에 스프 넣어"라고 말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없으면 여러분의 바이브 코딩은 시작도 하기 전에 망합니다.
2. '컨텍스트 부채'라는 무서운 고리대출
AI가 짜준 코드를 보면 처음엔 감탄이 나옵니다. "우와, 이게 되네?" 싶죠. 그런데 기능을 하나둘 추가하다 보면 갑자기 전체가 멈춰버리는 순간이 옵니다. 왜냐고요? AI는 앞뒤 맥락(Context)을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거든요.
- 비유하자면 이래요: 이건 마치 거실 따로, 화장실 따로, 주방 따로 지어서 합치는 거랑 비슷해요. 각각은 예쁜데, 합쳐놓고 보니 화장실 문을 열면 주방 싱크대가 막고 있는 식이죠. 이걸 저는 '컨텍스트 부채'라고 부릅니다.
- 기획자의 접근: 코드는 AI가 짜지만, 이 코드가 전체 집 구조(Architecture)에서 어디에 박히는 돌인지 관리하는 건 100% 기획자 몫입니다. "이 기능 넣으면 저번 기능이랑 충돌 안 하나?"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해요. 구현을 모르면 이 '의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3. 바이브 코딩은 '생산'이 아니라 '필터링'입니다
기획자가 직접 코딩해서 상용 서비스를 런칭하겠다? 저는 솔직히 말리고 싶습니다. 그건 기획자가 할 일이 아니에요. 우리가 바이브 코딩을 배워야 하는 진짜 이유는 "안 되는 걸 안 된다고 빨리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 현실적인 예시: 예전에는 어떤 기능을 기획하면 개발팀에 넘기고 "이거 구현 가능해요?"라고 물어보는 데만 며칠씩 걸렸죠. 이제는 우리가 직접 AI랑 '바이브'를 타보면서 1시간 만에 껍데기를 만들어볼 수 있어요. 해보니까 "아, 이건 데이터 구조상 너무 복잡하구나" 혹은 "생각보다 UX가 구리네?"라는 걸 기획 단계에서 바로 깨닫는 거죠.
- 기획자의 접근: 바이브 코딩을 '초스피드 검증 도구'로 쓰세요. 개발자랑 싸우기 전에 내가 먼저 삽질해 보고, 안 되는 건 기획 단계에서 쳐내는 겁니다. 이게 진짜 실력 있는 기획자의 모습 아닐까요?
4. '느낌'에 의존하면 '느낌'만 있는 쓰레기가 나옵니다
안드레 카파시가 말한 'Vibe'는 사실 고수들이 느끼는 '직관'을 말하는 거지, 초보들의 '감'이 아닙니다. 기본기가 없는 상태에서 바이브만 찾으면,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빈 '깡통 앱'만 나오게 됩니다.
- 비유하자면: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슬픈 느낌으로 연주해줘"라고 AI 피아노에 입력하는 거랑 같아요. 운 좋게 한두 번은 좋은 곡이 나오겠지만, 절대 명곡은 안 나옵니다.
- 기획자의 접근: 기술적인 베이스를 공부하세요. API가 뭔지, JSON 데이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DB 테이블은 왜 연결해야 하는지... 이런 '근육'이 있어야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제대로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뭘 해야 할까요?
글만 읽고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제 주말 삽질이 너무 아깝잖아요. 딱 세 가지만 약속합시다.
- 커서(Cursor) 유료 결제부터 하세요. 한 달에 20달러, 치킨 한 마리 값입니다. 이거 아까워서 무료 버전 쓰면 AI가 멍청한 대답만 하고, 여러분은 금방 포기하게 됩니다. 돈을 써야 본전 생각나서라도 더 깊게 파게 됩니다.
- 본인이 기획 중인 기능 중 가장 짜증 나는 거 하나만 골라보세요. 예를 들어 "엑셀 업로드하면 데이터 분석해서 그래프 그려주는 기능" 같은 거요. 이걸 AI랑 같이 만들어보세요. 분명히 막힐 겁니다. 그때 "왜 막혔지?"를 고민하는 그 지점이 여러분의 기획력이 폭발하는 지점입니다.
- 개발자한테 가서 물어보세요. "내가 바이브 코딩으로 이거 해봤는데 여기서 막히더라. 형들이 보기에 이거 왜 이런 거야?"라고요. 질문의 질이 달라지면 개발자의 눈빛부터 달라질 겁니다. 그게 진짜 협업의 시작입니다.
기획자 여러분, 세상이 변하는 건 위기가 아니라 기회입니다. 하지만 그 기회는 직접 손에 기름때 묻혀가며 삽질해 본 사람에게만 옵니다. 이번 주말, 저처럼 '코드 지옥'에 한번 빠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지옥 끝에 진짜 기획의 자유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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